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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에세이/10대의 기억

마음속의 그녀

by 재리리 2023. 7. 2.

누구에게나 마음에 담았던 상대가 있다.

그게 20대의 사랑, 30대의 연애가 아니다.

어린 시절, 사랑이라는 단어도 모를 시기.

그리고 그저 순수하게 느껴진 좋아한 호기심 같은

감정이다. 지금은 흐릿해진 기억으로

최대한 예쁘게 포장된 모습이다.

 

 

정확한 때는 잘 모르겠다. 복대동에 살았을 때니

초등학교 2학년? 1학년? 

4학년때까지 복대동에 살았다. 

산 같은 언덕을 오르다 보면 중간에 작은 요새 같은

맨션, 지금도 맨션이라고 말하는지는 아파트는

아니고 5층까지 있었으니 그렇고 작은 빌라같은

개념은 아니었다.생김새는 5층짜리 아파트이고

2개 동이 양쪽으로있고 중간의 공간은

주차장이었다. 통로는 네 통로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두 개의 건물을 앞두고 정문부터 들어가면

작은 마을을 이룬 사람들의 요새 같다.

정문을 지나면 바로 모래사장이 있는 놀이터가

있다. 그곳은 이곳에 사는 모든 아이들의쉼터이자

핫플레이스이고, 말하지 않아도 모여있는 장소이며,

모르는 친구들과 놀 수 있는 클럽 같은 곳이다.

 

그 뒤로 5층짜리 건물이 중간 공간을 두고

양쪽으로 길게 놓여있다.

그래서 그 사이는 햇빛이 잘 안 들어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람도 잘 통하고 시원하기도 했다.

사실 차들도 그때는 많이 없어서 꽤 넓게 느껴졌다.

 

난 이곳을 좋아했다. 복대동이 좋았다. 

정확히는 다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좋았던 거겠지만.

 

어른들의 계모임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재밌지 않은가.

옆 통로 사는 이웃, 윗집, 아랫집과 다 아는

사이고, 주말 저녁만 되면 술파티가 열리고,

우리 또래 친구, 형, 동생, 누나들은 한 집에

모여서 밤늦게까지 놀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알게 된 윗집 누나. 

사실 윗집 누나는 1살 아는 형의 집이었다.

그래서 간혹 가긴 했지만 누나는 늘 집에

있지 않았다. 마주치기 어려웠다.

 

그러다 주말에 친구가 카드를 가지러 간다고

같이 가게 되었다. 10시인가 11시인가

그리 덥지 않은 여름 어느 날이었다.

 

방에 기웃거리고 있는데 누나와 마주쳤다.

살짝 놀랐지만 누나가 먼저

'안녕~ '

하며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었다.

난 누나의 이름을 몰랐지만 누나는 나의

이름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왠지 좋았다.

 

누나는 학원을 가는지 어딜 가는지

책상에서 가방을 열고 공책이며 필통이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이 왔던 형은 열심히 자신의 카드가 어디

갔냐며 짜증 내며 찾고 있었다.

나보고 도와 달라고 하면서.

 

난 '어~어~' 하면서 도와주었다.

물론 내 몸은 가만히 있었고, 목소리만

내주었다. 내 눈은 이미 누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줄무늬가 들어간 반바지에 하얀 나시를

입고 있었다. 누나는 내가 반가운지

무슨 말을 하는데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는 형의 말도 스쳐 지나갔다.

나의 눈은 누나의 모습 하나하나를 담고 있었다.

 

정말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누나의 하얀 팔을 비추고, 긴 머리가

가렸다가 보였다가 하였다.

누나가 허리를 숙이고 움직일 때마다

여유로운 나시가 함께 움직였다.

그 사이로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누나의 속살이 보이기도 했다.

 

뭔가 신기했다. 성적으로 전혀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정말 순수하고,

그런 이상한 것은 중학교나 가서 알게

되었던 나인데, 무언가 나와 다른 성,

만화 같은 상황, 이미지,

아무튼나도 모르는 체 본능 같은 건지,

그냥 누나의 모습에 이끌려 내 몸이멈춰

버렸다.

 

모든 게 예뻤고, 아름다웠다.

누나의 말은 못 알아 들었지만

목소리는 노래처럼 들렸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을

아는 형이 카드를 찾았다며 와장창

깨버렸다.

 

난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나가야 했다.

누나는 내게 또다정하게 언제든 놀러 오라며

인사를 해주었지만,

그 뒤로 누나와 놀 기회는 없었다.

몇 개월 뒤 누나네 집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4학년까지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거나,

좋아하거나 그런 적은 전혀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성에게 관심이

간 적은 딱 그 순간뿐이었다.

 

 

나중에 20대 중반이 되어서 엄마에게

그 동네 소식을 짧게나마 듣게 되었다.

거의 다 이사를 갔고, 저녁 모임할 때

가장 많이 갔던 옆 통로 3층 집의 어른들만

그대로 살고 있고, 우리 윗집이었던 그 누나는

좋은 대학을 갔고, 회사에 취직해서 잘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 얼굴도 기억도 안 난다.

말 몇 마디 해본 적 없다.

그때 그 순수한 시절의 꿈같은 장면이었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누나.

내 마음 어딘가의 예쁜 기억 한 조각을

남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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