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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에세이/20대의 기억

사회에 온 걸 환영해

by 재리리 2023. 7. 17.

이게 진짜 사회생활인가?

가장 못 믿을 건 돈도 명예도 아닌

사람이다

어디선가 들었다.

그리고 바보인가, 사기를 당하게.

 

정말 순수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이나

사기에 당한다고 생각했다.

순순히 자신들의 돈을 주고

뒤늦게 깨닫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20대 초에 주유소에서 일하던 때이다.

키도 엄청 컸고, 말랐지만 긴 머리를

가져서 나름 멋이 있었다.

생각하는 것도 무턱대고 놀자 주의도

아니고,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자신의 좋아함과

싫어함이 명확한 사람처럼 보였다.

 

왜인지 나를 잘 대해줬고, 나와도

잘 맞는 듯 했다.

사회에 나와서 선배 같은 형 같은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반가웠고 좋았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몇 달을 일하면서 월급날이면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 형이 궁금했다.

물론 같이 일하던 관리자분들은

내게 그 형과 친해지지 말라고 얘기하고

나에게 얼른 일해서 돈 모으면

다른 일을 하러 가라고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왜 저렇게 좋은 형인데, 이미지가

마냥 좋지는 않을까.

 

어느 날, 형은 내게 제안을 했다.

홍대로 놀러 갈 건데 같이 가겠냐는

것이었다.

그때 알았지만 매달 월급날이 되면

오픈카를 하루 빌려서 드라이브를

하거나 놀러 다녔었다.

 

아무튼 내게 가볍게 놀러 가서

아는 사람들도 같이 만나서 술도

한 잔 하자고 했고, 그냥 드라이브만

하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 번쯤

다른 사람들과 만나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 나갔다.

 

지금으로 보면 벤치 구식이고

문 두 개인 은색 오픈카였다.

그래도 난 생애 처음 오픈카를 탄다는

마음에 들떴고, 생각보다 신났다.

 

우리는 그렇게 홍대로 달려갔고,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장소의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은 네이버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이었고, 주제는 스노보드였다.

 

난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스노보드의 세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비슷하게 생긴 여자 둘과

마주하며 술 한잔 했는데, 알고 보니

둘은 자매였다. 웃긴 건, 그중 언니와

그 형은 그날 눈이 맞았는지 

사귀기 시작했다.

 

아무튼 몇 달이 더 지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고, 그 형과 나는 친해졌는지

내게 갑자기 몇 만 원 빌리기 시작했다.

 

맞다. 빌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 5살이나 많은

형이 어린 내게 돈을 빌린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이곳은 더 이상 대학교가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같이 기숙을 하고 있고,

다음 월급날에 또 꼬박 잘 갚았기에

몇 번 더 빌려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8만 원, 또 어느 날은 10만 원,

또 어떤 날은 15만 원이었다.

그래도 돈을 잘 갚았기에 나도 모르는

믿음이 생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름 돋는 설계인데,

순진한 나는 그대로 걸려들었던 것이다.

 

일을 그만두기 한 주쯔음, 또 내게

돈을 빌렸다. 나도 모르는 새 이미

20만 원을 받지 못한 상태가 되었고,

일단 다른 일을 찾은 상태로

고시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그때도 형과의 연락은 지속

되었고, 겨울이었고 그때 여자들과

스키장을 가기로 했다.

스키장은 이미 예약을 다 해뒀고,

다만 가는 당일에 차를 빌려야 하는데,

현금이 부족하다며 내게 8만 원을

빌려달라 했다. 난 어차피 이따

만날 거니, 입금했고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도록 연락이 없음에

점점 싸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문자도 전화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전에 일하던 주유소 관리자 분들에게도

물어봤더니, 대뜸 돈 빌려줬냐고

하길래 아... 잘못됐구나 생각이

팍 들었다.

 

알고 봤더니 상습범이었고, 

이리저리 돈 빌리면서 그러고 살던

형이었던 것이다.

차를 빌리는 것도 다 자신의 돈으로

빌린 적이 없었으며, 지금은 그만둔

상태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길!

내가 사기를 당하다니.

믿었던 형이 사기 치는 놈이었다니.

 

나는 전에 그 형의 여자 친구이었던 동생

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행히 그날

나도 그 동생이 마음에 들긴 했다.

물론 만나지는 않고, 번호만 물어보고

헤어졌었고, 그 후로는 몇 번의

대화만 주고받았었다.

 

사실 그들과 함께 같이 가기로 한 거라서

연락을 했더니 답장이 없었다.

이상하고 참 이상했다.

그 와중에 형은 갑자기 문자를 답한 게

차를 빌렸는데 펑크가 나서

좀 늦을 거라고 했다.

 

이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너무 이상해서 누나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대뜸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굉장히 차분하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알고 봤더니 언니가

그 형의 애인인 분이

돈을 빌려줬었는데 받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소송을 준비

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하면서

바로 끊으려 하길래

천천히 물었다.

 

그 누나는 100만 원 정도 빌려

줬다고 돌려받지 못했고, 나 역시

그와 짜고 한패로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꼬셔서 돈을 갈취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나 역시 돈을 몇 십만 원 빌려줬고

못 받았다고, 지금까지도

그럼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오늘도 돈을 빌려줬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 자식은 그런 녀석이었다.

차 한 대 빌려서 여자들 꼬셔서

돈 빌리고 사기 치는 녀석.

 

갑자기 믿었던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사실 그 감정보다는 내가

속았다는 사실이 분해 미칠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되지도 않을

소송을 하기 위해 준비를 했지만

결국 내용증명만 보내는 게

전부였고, 협박성 메시지로

한풀이하는 게 다였다.

 

결국 내용 증명을 받은

그 xx는 내게 오히려 지금 어디냐고

죽고 싶냐고, 한 번 만나면 죽는다는

난리 난리를 치는 메시지를

내게 보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xx다...

어린 나는 살짝 무서운 느낌을

받았지만, 소송을 하는 비용이 더 든다는

말에 우리는 그만 멈추기로 한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악의 맛보기를

당한 나였다.

돈도 없어서 기숙하고, 상황이 안돼서

고시원 생활하는 어린 사람의 피 같은

돈을 빼돌리는 놈.

뭐 그런 상황을 이해하는 인간이라면

사기 칠 생각은 안 하겠지만.

 

그렇게 험난한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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