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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에세이/10대의 기억

내가 영웅이 되리라

by 재리리 2023. 7. 18.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만화나 영화,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그들은 언제나 정의롭고 용감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누군가를

도와주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마음만 그렇게 되고 싶었다.

행동으로 나오기까지 수많은

생각회로를 거쳐야 하는 내게는

역시나 힘든 일이었다.

 

양보와 도움을 학교에서 배우지만

실전에서 써먹기란 생각보다는

꽤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매우 내성적이고 낯가림도

심했으며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질 못했다.

그래서 발표시간이 늘 두려웠고

칠판 앞에서 여러 친구들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얼굴은

새빨갛게 닳아 올랐다.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말을

이미 알게 되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당연히 우주소년단 같은 어울리는

동아리, 웅변 학원을 다니며 

소리 지르는 법, 태권도 학원을 

다니면서 몸을 단련하기 등

시도한 것들은 많았으니

난 본성을 이기지 못했다.

나의 성향은 생각보다 강했다.

 

계단을 오르다가도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낑낑대는 모습을 봐도

도와드릴까요?

말을 걸며 도와드리는 시도조차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정말 그 말을 꺼내기까지

수십 가지의 생각을 한다.

 

도와드린다고 했다가 거절하면

어쩌지? 민망해질 텐데.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려나?

괜한 도움인 걸까? 

...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행동으로 옮겨야지 할 때는

이미 늦는 경우가 허다했다.

 

 

예전에는 체벌이 있었고

당연했다는 시절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조용히 들어와

우리에게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전 시간이 미술시간이라

붓을 사용했고, 붓글씨 수업이라

다들 먹을 이용했었는데,

복도 한쪽 벽에

누군가 일부러 아니면 실수인지

검은 먹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누가 그랬냐며

조용히 물었지만 아무도 손을

드는 아이는 없었다.

우린 결국 모두 책상으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선생님은 다시 우리에게 물었다.

혼내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

솔직해지고, 괜찮은 거라며

자진해서 손을 들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들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이런저런 인생 얘기를

하는 듯했다.

물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기회를 우리에게

주었다. 이번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회초리로 한 대씩 맞을 분위기였다.

 

 

눈을 감은 나의 머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의 영웅 심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고,

내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그러지 않았지만, 내가

희생해서 혼나고 끝내자!

 

난 떨리는 손을 살포시 올렸다.

그리고 눈은 감았으나 꽤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손을 내리라 했고,

내가 영웅이 되는 길을

막았다.

 

전혀 믿지 않았고,

결국 우리들은 손바닥을 아주

살짝 아프게 한 대씩 맞고

복도를 함께 청소했다.

 

티비에서 보면 대신 맞고,

대신 혼나고 그런 장면이 있던데

난 그럴 수가 없는 건가?

 

아마 조용한 아이였고,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던 터라 전혀 믿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나 같은 영웅심리를 가진

다른 친구들도 손을 들었을 수도 

있겠고.

 

 

그런 비슷한 일은 더 나이가 들면서도

몇 번 한 적은 있었지만

역시나 그럴 때마다 난 영웅이 되지

못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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