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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에세이/일상 에세이

이게 힐링이지

by 재리리 2023. 8. 2.

사람들은 시대별로 다양한 단어와 그에

부합하는 의미들을 만들어서 하나의 

문화이자 살아가는 방식, 고유명사로

만드는 일을 참 잘한다.

 

세상이 힘든 일이 많은 요즘이다.

취업도 어렵고, 묻지 마 살인도 많아지고,

가만히 있던 천장이 떨어지질 않나,

길 가다 들이박은 차에 죽고, 음준운전에

죽고, 비가 와서 죽고, 더워서 죽고,

순살 아파트가 드러나고..

그냥 모든 게 힘들다.

솔직히 살아가는 자체가 이제는 대단하고

엄청난 일일 정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워라밸이라고

일은 일, 나의 시간은 나의 것이라며

여유로워 보이던 사람들이었으나

이젠 그런 여유조차 부릴 돈과 시간과

마음적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빠지지 않는 단어는 역시 힐링이다.

이럴 때 힐링을 통해 충전의 시간을 갖고

다시 나아가자. 각자 잘 살아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힐링이라 하면 딱 그 영화가 떠오른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게 힐링이라고

많은 프로그램에서 떠들어댄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벗어나 시골로 가서

산과 들과 바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힐링이라 말한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 가서

집밥을 먹는 것을 힐링이라고 한다.

해보지 않았던 수영, 패러글라이딩, 운동,

각종 취미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을

힐링이라 얘기한다.

 

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들은

어차피 티비에서 보던 것들이고 그들이

연출해 낸 장면이니까. 그런 것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농촌의 작은 마을 풍경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에 누워있는 모습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간단한 요리와 맥주 한 잔

비 오는 날의 차박 또는 캠핑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편하게 보내는 시간

 

 

사실 좀 웃기기도 하다.

평소에 충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고,

이미 했었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기도 한 것들을

마치 특별한 척, 멋들어진 척 포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말에 혼자 나가 한강이던, 근처 동산이던

가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은 적 있는가.

 

혼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안일을 마치고

유튜브를 보며 간단한 요리를 완성시켜

맥주와 함께 하는 저녁시간 보낸 적 있는가.

 

생전 가보지 않았고, 신도 믿지 않지만

종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솔솔 부는 절에

가본 적이 있는가.

 

주변의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오다가 주변의 백숙집에서

식사를 하고 온 적 있는가.

 

너무 쉽게 할 수 있고, 큰 제약도 없고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 것들인데

우린 그저 핸드폰 작은 화면 속에서 다른 이들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저게 힐링이지 하며

부러워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아닌가.

 

 

실제로 하면 사실 큰 특별함도 없다.

오히려 준비하고 치우는 과정이 귀찮을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좋은 건 잠깐이고 순간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누리기 어려운 때가 많다.

 

 

힐링이라 말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아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드는 생각들이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여겼고 당연했던 것들이

이젠 특별하다고 칭하는 것처럼

언제나 그렇듯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었지만

그게 지겹고, 소중한지 몰라서 밖에서

사 먹고, 배달시켜 먹고, 각종 반찬을 쉴 때까지

두고 버리고 했다.

 

매일 갈 수 있는 한강이었지만, 고작 15분 걷는 게

귀찮다는 핑계로 좋은 환경을 미루다가

나중에 다른 동네로 이사 가서는 한강라면,

한강 맥주, 한강에서 자전거 타기, 한강에서

돗자리 펴놓고 책 읽기 타령을 한다.

 

캠핑장에 가고 오는 길만 1시간 걸리고,

가서는 어차피 고기, 소시지, 찌개 먹는 건

매한가지인데, 뭐 하러 고생하냐 심지어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라며 귀찮아한다.

 

 

나도 할 수 있는 귀찮은 일상을 남들이

한다고 부러워하고, 이제 다시 하면 좋지 않을까

란 생각으로 억지로 할 필요도 없다.

힐링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억지로 쉴 필요도

없다.

 

 

정말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고 

누워있어도 그게 쉼인 거고,

따뜻한 차 한 잔 타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행위가 이미 좋은 쉼이고,

좋은 풍경, 멋들어진 장소가 아니어도

그냥 집 앞 공원길, 아파트 단지 내 산책길,

편의점 가는 골목이어도 가벼운 산책이라면

그것 또한 건강한 쉼이다.

 

어차피 티비는 아주 일상적이고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을 단지 연예인의 이름과 몸을

빌려 카메라로 담아내는 연출인 것뿐이지,

그럴 따라 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그것만이 힐링이고 좋은 쉼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사람마다의 쉼과 충전의 방식은 다르기 때문에

그런 행위들이 좋은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뭐가 좋고 나쁘다의 기준은 없다.

다만 나의 성향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일상에서

조금씩 아무렇지 않게 하며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힐링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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