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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에세이/20대의 기억

금사빠

by 재리리 2023. 8. 2.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누군가와 추억을 공유하다 보면

중고등학교 때 연애도 꽤 많이 한 듯 보인다.

난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쉽다.

그럴 생각도 못했고, 그런 노력도 없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크지는 않았던 터니까.

하지만 만약 이성을 만나고 그런 사랑과

이별을 겪었다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은 해본다.

 

난 주관이 없다.

나의 자의식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기본값이 없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다양한 경험이 없다 보니 일이나 공부나

연애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모험적이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도

아니라서 어설프게 하다가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뒤늦게 해 보는 성향이라

늘 새로운 일을 마주하는 것에 두려움이

앞섰고, 힘들었고, 피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돼도

이런 점이 좋았지만, 다른 이성을 보면

또 그 사람이 또 다른 매력에 끌려 좋아졌다.

물론 바람을 피우거나, 문어발식 연애를

하거나 할 깜냥의 사람은 아니었으니

그냥 착해 빠진 녀석이었다.

 

그래서 혼자만 생각하고 스스로만

피폐해졌던 것이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만나면 어떨까, 

키가 더 큰 이성이면 좋을 거 같은데,

귀여운 스타일이면 어떨까 

참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연애도 그리 건강하지만은

않았고, 금방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기

일수였다.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잘 모르게 되는, 그냥 남이 날 좋다 하면

좋아하게 되고, 받아들이는 연애를 주로

하게 되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다가갈 용기조차 없던 녀석이니 남들은

몰라도 스스로에게 얼마나 한심한지

부끄러웠다.

 

혼자 지내며 연애하고 싶다고 매일을

속앍이 하던 어느 날,

한 번에 두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 친구는 일을 하며 매일 보는 사람

또 한 친구는 성당을 다니며 보던 사람

물론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그때는

누구라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모임을

가야 기회라도 있을 것 같아서 참여했던 거였다.

 

둘의 성격은 달랐고, 연하와 동갑이었다.

매일을 고민했다. 누구와 만날까를 말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정말 웃긴데, 그들이

날 만나나 줄까, 좋아나 한대?

 

하지만 느껴지는 게 있어서 그들도 날

그리 싫어하지는 않고 있구나를 인지하고는

있었다.

 

어느 날은 이 친구가 좋았고, 또 다른 날은

저 친구가 좋았다. 난 혼자 상상 속의 연애를

매일 했고, 누가 더 좋은지, 누가 더 마음에

끌리지는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결국 한 친구와

만나게 되었고, 다행히 고백도 받아주었다.

엄청 짧은 연애는 아니었지만, 만나면서도

다른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어떨까..

 

참 이렇게 보면 나쁜 놈인데, 철없는 소리이고,

그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만큼 스스로에게 자신도 없고, 확신도 없고,

좋아하는 감정, 사랑하는 감정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사랑을 잘 모르지만

그때는 얼마나 몰랐는지 

짐작도 안 간다.

그 와중에 연애를 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건강한 연애인척,

어른의 사랑인척,

했지만

실제로는 애였고, 바보 같았다.

 

 

어이없는 건 그 뒤로도

계속 연애 전 둘 중에 한 명을

골랐고, 역시나 내가 좋아함보다는

날 좋아해 준 상대를 만났다.

 

여전히 어리숙한 사랑을 했고,

지금은 사랑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겠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

그저 남의 연애얘기에 훈수만

둘 줄 아는 겁쟁이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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