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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에세이/10대의 기억

엄마의 규칙

by 재리리 2023. 8. 14.

엄마는 늘 가족과 무언가 하길 바랐다.

우리 집에는 여자가 한 명이다. 오로지 엄마뿐. 아빠도 남자, 나도 남자, 동생도 남자.

심지어 잠시 키웠던 강아지 역시 남자였으니. 수다쟁이도 없었고, 엄마의 마음을 잘 아는 예쁜 딸도 없었으니 함께 모여서 무언가 할 수 있을 시간도, 필요도 못 느꼈던 우리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주말마다 무언가 함께 하길 원했다.

 

일요일이 되면 이미 시끄러워 잠에서 깬다.

칙칙칙칙, 촤하~

누군가 아침부터 계단을 솔로 박박 닦고, 물을 뿌려댄다. 그래서 매번 깨끗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지만, 한 번도 누가 닦았는지 이사 가기 전까지도 얼굴을 본 적은 없다.

 

우리 집은 만화가 다 끝나고 10시 11시쯔음 밥을 먹기 전, 대청소를 시작한다.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엄마는 우리에게 물 묻은 신문지를 쥐어주고는 유리창을 닦으라 한다. 엄마는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고, 시끄러운 모터소리에 나의 작은 심통 한 불만을 조심스레 덧대어 보기도 한다.

 

나보다 5살 어린 동생은 잘은 못하지만

곧잘 따라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게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점심은 뭘 먹는 걸까,이따가 만화는 시간 맞춰서 볼 수 있는 걸까,친구들이 오늘 놀이터에 나올까 하는것들이다.

 

집이 워낙 작아서 청소는 금방 끝난다.하지만 그 시간이 내게는 유독 길게 느껴졌다.우리는 힘든 내색을 하고, 엄마는 - 아이고 그래 잘했다. 고맙다. 하는 말을 해주고, 밥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다른 주말이 되자, 우리는 외식을 하기로 한다.그래도 한 달에 한번 많으면 두 번은 했다.그렇다고 크게 다른 메뉴는 아니다.우리는 매번 동네에 걸어서 15분, 20분 정도떨어진 갈빗집을 자주 갔다.엄마는 우리가 함께 외식을 하길 바랐다.그러니 주말 저녁에 나가서 먹었겠지.

 

생각해 보면 그때 아빠는 술을 마셨던 모양이다.왜냐하면 집에 올 때는 늘 아빠의 술냄새가조금씩 났고, 얼굴도 붉어 보였으니.우리 가족은 늘 말이 없었다.다 모여도 하는 얘기가 없었다.그래서 엄마의 잔소리만 들었고, 걱정만들었다. 결국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들지 않았다.

 

후다닥 먹고, 냉면까지 알차게 챙겨 먹고 나면곧장 집으로 향했다. 나와 어린 동생은어둑해진 저녁에 집으로 오는 이 시간이늘 좋았다. 왜냐하면 달리기 시합을 했으니까.누가 이기고, 왜 뛰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두 팔을 뒤로 쫙벌려 이상하게 뛰고, 그게 웃기다고 서로깔깔거리며 달렸다.

 

또 어떤 날은,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었지만 못한다고생각을 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어쩌다 95점도나왔으니까. 아빠는 늘 이상한 옛 노래를불렀다. 그래도 아빠는 노래를 잘했다.엄마도 불렀는데, 기억은 안 난다.그리고 마지막은 늘 나의 마무리 노래로매듭을 맺었다. '초록바다' 인가.동요를 불렀다. 한 톤 높게 음을 장착해서부르면 아주 짧지만 강렬하게 끝나고,보통은 100점이 나오기 때문에 기분 좋게집으로 올 수 있었다.나중에 변성기가 지나가고 내 목소리로는절대 이 동요를 부를 수 없게 되었는데,얼마나 슬펐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엄마는 가끔 경양식집에도 우리를 데리고갔다. 동그란 테이블에 하얀 테이블보가깔려 여러 개의 포크와 나이프가 있는 곳.기가 막힌 스테이크가 아니라 돈가스를먹는 곳이다.어릴 때는 많았으니까.

 

엄마는 늘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은데,언제 이런 곳을 왔던 걸까?뽀얀 크림색의 수프가 먼저 나오면,나는 후추를 왕창 뿌려서 먹는 걸 좋아한다.가끔 후추가 매워 컥컥거릴 때도 있지만,후추를 뿌리고 그 부분을 떠서 먹고, 다시 깨끗한 곳에 후추를 뿌리고 또 그 부분을 먹고. 수프를 먹는 건지 후추를먹는 건지는 모르지만 맛있게 먹었으면그만이다.

 

다음은 돈가스가 나온다. 소스는 이상한모양의 그릇에 담겨 나오는데, 뿌려 먹어야한다. 엄마는 한 번에 다 잘라 놓고 먹지않아야 한다고 했다.

 

- 엄마가 하는 거 봐~ 이렇게..

 

포크를 왼손에 나이프는 오른손에쥐고 이렇게 슥슥 잘라서 바로 입으로먹으면 우아하게 먹을 수 있다 알려줬다.

 

왼손잡이가 아닌데 어떻게 왼손으로 먹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그게 나의 에티튜드가 되었다.포크와 나이프는 바깥쪽부터 사용해, 더 작은 포크와 수저는 디저트에 사용한다.

 

 

늘 엄마 혼자 궁금하고, 질문하고, 우린단답형으로 말을 해서 대화는 금방 끝나기를반복했다. 엄마도 재미도 없는 아들들과 남편 사이에서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면서도 함께뭐라도 하고,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려 하는시간을 우리에게 기꺼이 주었던 것 같다.정말 부모이니까, 엄마이니까 그런 걸까.어릴 적에는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했고크게 신경 안 썼던 부분들이 크면서 꽤 도움이 되고, 나름 좋았던부분들로 다가오면서 엄마는 참가족을 위해 많은 것들을 했구나노력했구나. 사랑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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