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3 시골은 정말 큰 놀이터 태어나는 건 내 뜻으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는 곳도 내 뜻으로 되는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부모의 선택의 의해 태어나고 살아진다. 나는 드넓은 마당이 있고, 야외 테이블에서 오붓한 식사를 하는 예쁘고 하얀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흔한 병원에서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날 엄마는 시골집 방에서 이불을 깔고 나를 낳아야 했고,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아궁이에 불을 때고 음식을 했다고 한다. 정말 슬프고 안타까우며 어이가 없었지만 그때 당시의 사상과 어르신들의 가치관이 그런 때였으니 다들 그렇게 넘어갔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신이거나 가족 행사가 있거나, 무슨 일이 있거나, 명절 때, 제사 때는 어김없이 시골로 모였다. 우리가 큰 집이라 작은 집 둘, 고모 이렇게 있었고, 아이들.. 2023. 7. 20. 어린 시절의 놀이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던 복대동에서 수많은 추억을 얘기할 수 있다. 친구들의 얼굴, 하루하루의 일상,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 누군가와 놀았던 놀이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얼마나 놀이가 즐거웠으면 학교의 생활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 눈 감았다 뜨면 난 놀이터에 모여 있는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친구도 있고, 같은 맨션에 살지만 어색한 친구도 있고, 키도 훨씬 큰 형들도 있다. 우리는 이때만큼은 I의 성향은 내 던지고 하나같이 E로 돌아와 놀이를 시작한다. 어제 딱지치기를 했으니 오늘은 비석 치기를 한다. 놀이터 한 구석에 공사하다가 버리고 간 회색빛 비석들이 놓여있다. 역시 비석 치기에는 좋은 비석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각진 비석, 직사각형의 비석, .. 2023. 7. 3. 내게도 동생이 생겼다 나랑 남동생이 5살 차이가 나는데 그래도 좀 혼자 걸어 다니고 할 정도면 3살 4살 되는 거 같다. 그 장면이 생각이 난다. 집 근처 놀이터였고, 엄마는 우리와 함께 나와 놀았다. 내 눈앞에는 나보다 훨씬 작은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넘어지기도 하고 또 곧장 잘 일어나서 걸었다. 그러나 난 잡아주거나 놀아주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동생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같이 사는 나보다 작은 아이이고, 엄마가 데리고 다니니까 같이 봤던 느낌이다. 동생도 내게 엄청 놀아달라고 오진 않았는데, 같이 다니는게 귀찮고 얼른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에 더 크면서는 누구보다 같이 잘 놀았지만 10살 이전의 동생에 대한 기억은 이것뿐이다. 아마 그때는 또래의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없었고.. 2023. 6.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