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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7

엄마의 규칙 엄마는 늘 가족과 무언가 하길 바랐다. 우리 집에는 여자가 한 명이다. 오로지 엄마뿐. 아빠도 남자, 나도 남자, 동생도 남자. 심지어 잠시 키웠던 강아지 역시 남자였으니. 수다쟁이도 없었고, 엄마의 마음을 잘 아는 예쁜 딸도 없었으니 함께 모여서 무언가 할 수 있을 시간도, 필요도 못 느꼈던 우리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주말마다 무언가 함께 하길 원했다. 일요일이 되면 이미 시끄러워 잠에서 깬다. 칙칙칙칙, 촤하~ 누군가 아침부터 계단을 솔로 박박 닦고, 물을 뿌려댄다. 그래서 매번 깨끗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지만, 한 번도 누가 닦았는지 이사 가기 전까지도 얼굴을 본 적은 없다. 우리 집은 만화가 다 끝나고 10시 11시쯔음 밥을 먹기 전, 대청소를 시작한다.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 2023. 8. 14.
시골은 정말 큰 놀이터 태어나는 건 내 뜻으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는 곳도 내 뜻으로 되는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부모의 선택의 의해 태어나고 살아진다. 나는 드넓은 마당이 있고, 야외 테이블에서 오붓한 식사를 하는 예쁘고 하얀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흔한 병원에서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날 엄마는 시골집 방에서 이불을 깔고 나를 낳아야 했고,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아궁이에 불을 때고 음식을 했다고 한다. 정말 슬프고 안타까우며 어이가 없었지만 그때 당시의 사상과 어르신들의 가치관이 그런 때였으니 다들 그렇게 넘어갔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신이거나 가족 행사가 있거나, 무슨 일이 있거나, 명절 때, 제사 때는 어김없이 시골로 모였다. 우리가 큰 집이라 작은 집 둘, 고모 이렇게 있었고, 아이들.. 2023. 7. 20.
가난을 보다 이제와 가끔 아빠와 술을 마시면 그런 얘기를 종종 했다. '이제야 아빠가 대단하다는 걸 느껴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았다 생각했는데, 크게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거 하고, 학교 다 가고, 외식도 한 달에 한두번 하고, 차도 있었고, 여행도 종종 다녔고, 가고 싶다면 학원도 다 보내줬고, 용돈도 부족함이 없었고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이었구나 생각했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 그런 평범함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어요' 아빠는 그저 웃기만 한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면서. 하지만 지금의 입장에서는 한 직장에서 다니고 정년퇴직을 하고, 아이 둘 키우고, 집 있고, 차 있고, 이끌어온 아빠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난 가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부.. 2023. 7. 6.
어린 시절의 놀이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던 복대동에서 수많은 추억을 얘기할 수 있다. 친구들의 얼굴, 하루하루의 일상,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 누군가와 놀았던 놀이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얼마나 놀이가 즐거웠으면 학교의 생활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 눈 감았다 뜨면 난 놀이터에 모여 있는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친구도 있고, 같은 맨션에 살지만 어색한 친구도 있고, 키도 훨씬 큰 형들도 있다. 우리는 이때만큼은 I의 성향은 내 던지고 하나같이 E로 돌아와 놀이를 시작한다. 어제 딱지치기를 했으니 오늘은 비석 치기를 한다. 놀이터 한 구석에 공사하다가 버리고 간 회색빛 비석들이 놓여있다. 역시 비석 치기에는 좋은 비석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각진 비석, 직사각형의 비석, .. 2023. 7. 3.